삼국의 유물 유적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

역사와 나 2021. 1. 18. 12:39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출처: 문화재청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백제를 대표하는 탑입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부여 정림사지 오층 석탑은 백제의 건축술을 대표하는 석탑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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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 석탑

출처; 문화재청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백제의 건축과 문화를 이해하는데에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석탑입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현재 남아있는 국내 최대의, 가장 오래된 석탑입니다. 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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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건축유산은 남아있는 것이 매우 적은데, 이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정림사지 석탑은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과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석탑이면서 목탑의 양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림사지 석탑은 돌로 지어진 석탑이지만. 그 형태와 양식은 목조건물의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의 소정방이 쓴 글로도 유명합니다. 이로 인해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평제탑"이라는 안타까운 호칭을 얻기도 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귀중한 백제의 건축유산인 부여 정림사지 석탑의 특징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정면
우측
정면
측면

출처: 문화재청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좁고 낮은 기단과 5층으로 구성된 탑신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부여 정림사지 석탑은 목조건물의 기법을 사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바로 배흘림기법입니다. 배흘림 기법은 위아래는 좁고 가운데는 볼록하게 표현하는 기법을 말합니다. 그리고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에는 각층에 지붕돌이 있는데요, 지붕돌의 끝을 잘 보시면 위로 살짝 올라가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지붕돌의 이러한 모습도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에서 찾을 수 있는 목조건물의 양식입니다. 배흘림기둥과 치켜 올라간 지붕돌은 정림사지 오층석탑이 석탑이지만 목조건물의 기법과 양식을 적용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입니다.

측면
지붕돌

위 사진에서는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의 지붕돌이 잘 보입니다. 마치 목조건물처럼 살짝 그 끝이 위로 올려져 있습니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정림사지

출처: 문화재청

명문

출처: 문화재청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백제의 망국 당시 당의 장수 소정방이 작성하도록 한 명문으로도 유명합니다. 백제는 신라와 당의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게 되는데요, 당나라의 장수 소정방은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에 백제의 멸망을 기록하도록 합니다. 이 글에는 백제를 멸망시켜 사람들을 포로로 사로잡은 내용과 공을 세운 인물들, 백제의 영역에 대한 관할 등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비극적 사건 이후 이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평제비"라는 비극의 이름을 얻은 것입니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두 개밖에 남지 않은 백제 석탑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고 귀중합니다. 배흘림기법과 치켜올린 지붕돌은 석탑에 목조양식을 적용한 백제인들의 건축기술을 보여줍니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이러한 가치를 토대로 국보 9호로 지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