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의 유물 유적

발해 석등, 발해의 기상을 보이다

역사와 나 2021. 1. 22. 09:24

발해 석등

출처: 포토뉴스

발해 석등은 발해의 대표적인 유적입니다.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이며, 만주를 다스렸고, 당과 교류하며, 독자적인 문물을 발전시킨 국가입니다. 발해 석등은 그러한 발해의 기상을 잘 보여줍니다. 오늘 다룰 발해의 석등은 상경 용천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상경은 발해의 5경 주 하나로, 상당기간 발해의 중심 수도 역할을 담당했던 도시입니다. 높이는 6.3m입니다. 이 석등은 발해의 많지 않은 유적 중 하나이므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이 석등의 재질은 현무암입니다. 이 석등의 아래쪽(하대석)을 보시면 3중으로 연꽃잎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하대석의 장식은 당나라와 통일신라의 어떤 석등에서도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양식입니다. 이 점에서 당시 발해가 당과 통일신라와 구별되는 독자적인 문화 양식을 가졌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 석등을 통해서는 당시 발해가 어떠한 국가와 교류하고, 영향을 주고받았는지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 석등은 발해 시대의 석등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기에 발해의 다른 석등과 비교하는 것은 어렵지만, 당대의 인접국인 당과 신라의 석등은 상당수 남아있어 타국의 석등과의 비교는 가능합니다.

석등의 도면과 평면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8각 석등, 신라와 발해

석등의 표면을 보시면 팔각형이죠? 이러한 팔각형 평면은 중국에서는 북제와 당나라에서 일부 보이지만, 전체가 팔각형인 경우는 백제에서 시작하여 통일신라의 시기에 확정된 양식입니다. 따라서 발해 석등의 구도는 통일신라의 석등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8각 석등인 통일신라의 성주사지 석등

출처: 충청남도 보령시

발해의 석등의 상대석
발해의 석등의 하대석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3중의 연꽃잎

발해 석등의 하대석에는 연꽃잎이 3중으로 나있는데, 이는 매우 독특한 특색입니다. 이러한 양식은 당나라에선 보이지 않고, 다만 성주사지 석등에는 연꽃잎이 2중으로 구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석의 3중 연꽃잎은 당나라의 석불에서도 보이고, 통일신라의 실상사의 증각대사응료탑과 수철화상능가보월탑에서도 확인됩니다.

실상사 증각대사응료탑

출처: 문화재청 국가유산포털

실상사 증각대사탑의 상대석, 3중의 연꽃잎이 보입니다.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실상사의 수철화상능가보월탑

출처: 국립문화재연구소

사진에서 상대석의 3중 연꽃잎이 보이시죠? 이처럼 상대석에서의 3중 연꽃잎은 당과 신라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런데 연꽃잎의 양식을 보았을 때는 고구려의 영향이 드러납니다. 하대석에선 고구려의 요소가, 상대석에선 고구려나 고려의 수막새의 모습이 보이는 것입니다. 결국, 배치는 당과 신라에서, 양식은 고구려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발해 석등의 화사부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8각의 화사부

마지막으로 살펴볼 곳은 화사부입니다. 화사부가 팔각형인 것도 발해 석등에서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화사부의 팔각형은 당나라에서도 일부 보이지만, 특히 통일신라에서는 보편적인 양식이었습니다. 아마도 통일신라의 목조재현을 위한 팔각형 양식이 발해에도 전해진 것으로 해석됩니다.

발해 석등, 한반도 석등의 계보를 잇다

살펴보았듯이 발해 석등은 당나라를 계승하기 보다는 삼국과 신라의 석등 양식을 계승하고 한반도의 건축 역사에서 일부분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부분적으로는 고구려를 계승했지만, 이 석등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신라의 영향력입니다. 전체적인 석등의 구조와 형태가 통일신라의 석등과 많은 공통점을 공유합니다. 이러한 점을 통해 발해와 통일신라 사이에 문화적인, 건축적인 방면에서의 교류도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발해 석등은 부분적 고구려의 계승과 통일신라와의 영향력 교류의 산물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