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직공도

2020. 12. 23. 10:22삼국의 유물 유적

도자기 위의 그림이 양직공도입니다.

출처: 국립김해박물관

양직공도는 남북조시대 중국과 무령왕 시기 백제의 교류를 엿볼 수 있는 유물입니다. 양직공도는 중국 양나라에 파견된 여러나라의 사신을 그린 그림입니다. 여기서 양나라는 중국의 남북조 시대의 남조에 해당하는 양나라입니다. 우리나라가 삼국시대를 보내고 있을 때, 중국은 주로 남북조 시대 였습니다. 위촉오의 3국이 서진으로 통일된후 서진이 무너지며 5호 16국 시대가 되었고, 이후 등장한 것이 남북조 였습니다. 백제는 무령왕 시기에 접어들어 남조였던 양나라와 외교 활동을 벌였는데, 그러한 흔적이 양직공도에 남은 것입니다. 이 유물은 무령왕 시대의 백제 사신의 모습과 역사적인 기록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역사적 자료입니다.

가장 오른쪽의 사신이 백제의 사신입니다.

출처: 국립김해박물관

양직공도를 통해 백제의 사신이 어떠한 복장을 갖추었는지 살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양직공도의 가치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백제 사신의 모습 옆에 쓰여진 글이 보이시죠? 그것은 백제에 대한 기록인데, 이 양직공도의 그림은 당시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사료입니다. 먼저 살펴볼 구절은 “진(晋)나라 말에 고구려가 요동(遼東)·낙랑(樂浪)을 차지하고, (또한 백제는) 요서 진평현(遼西晋平縣)을 차지하였다(晋末駒麗略有遼東樂浪亦有遼西晋平縣)”입니다. 고구려가 미천왕 시기에 낙랑군을 축출하고, 이후 요동을 차지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백제가 요서의 일부를 차지했다는 이 기록은 매우 놀라운 기록 입니다. 양직공도의 이 기록과 송서 백제전, 양서 백제전의 기록을 통해 백제의 요서 진출이 제기된 것입니다. 그런데 백제가와 요서의 관계에는 풀리지 못한 의문점이 많습니다. 일단 바다를 건너야 하는 거리이기에 (사이에 고구려가 있으므로) 영토로 점령하기는 쉽지 않은 거리입니다. 게다가 당시 중국의 북방에서는 북위등이 군사력을 행사했기에 영토로 점령했다는 주장에는 회의론이 많습니다. 따라서 최근에는 백제가 '일시적으로' 무력진출했거나 요서에 '상업적인 해상무역거점'을 마련했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양직공도에는 백제가 22담로에 자제와 종족을 파견했다는 기록도 있어, 백제의 통치제도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양직공도

출처: 국립김해박물관

정리하자면, 양직공도는 무령왕 시기 백제 사신의 모습과 22담로라는 지방제도 등을 알게하는 귀중한 유물입니다.

'삼국의 유물 유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주 배동 석조 여래 삼존입상  (0) 2020.12.25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 삼존상  (0) 2020.12.24
산수무늬 벽돌  (0) 2020.12.22
칠지도  (0) 2020.12.21
백제 금동대향로  (0) 2020.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