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대사 이야기: 잠깐, 옆나라들의 상황 좀 보자! 청나라의 상태가!?!?!? 청나라 아편전쟁 남경조약 북경조약 애로호 사건 양무운동 임칙서 공행 난징조약 최혜국대우 영사재판권

2021. 1. 25. 10:30일본의 근대사

이번 글에서는 잠시 옆나라로 가볼 것입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일본은 점점 대외 팽창의 야욕을 보이게 되고, 일본의 팽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국가의 동향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청나라의 쇠퇴를 다루겠습니다. 

아편전쟁

저번 글에서 아편전쟁이 잠시 언급되었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아편전쟁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청나라는 18세기 이후부터 "광동무역체제"를 유지해 왔습니다. 이 무역체제는 광저우에 위치한 특허 상인  공행을 통해서만 무역을 하는 제도였습니다. 당시 영국은 중국과 공행을 통한 제한된 무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국의 중국산 차 수요가 증가하자 영국은 막대한 은을 지불하고 차를 구입했습니다. 그러자 점차 영국의 은 보유량은 감소했습니다. 영국은 이러한 무역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차례 청나라에 시신을 파견하여 제한무역을 그만하고 자유무역을 시행할 것을 요청했지만, 청나라는 이러한 요청을 모두 거절하였습니다.  결국 영국은 식민지인 인도에서 재배한 마약인 아편을 청나라에 밀수출하여 무역 적자를 해소했습니다. 이렇게 영국과 청나라, 인도의 삼각 무역이 이루어 졌습니다. 

아편에 중독되는 청나라 사람들

그렇게 청나라 사람들은 점차 아편에 중독되어 갔습니다. 아편을 가지고 피우기 위해서 청나라 사람들은 무엇이든 팔았습니다. 무기력해지는 사람들로 인해 청나라의 국력은 갈수록 저하되었습니다. 결국 청나라는 임칙서라는 관료를 광저우 파견하여 아편의 밀무역을 엄격하게 단속했습니다.

임칙서

임칙서는 아편을 엄금할 것을 다짐하고 광저우에 있던 영국 세력을 압박하여 아편을 압수하고 없앴습니다. 

영국은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영국을 이것을 계기로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여 아편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 것이 바로 1840년의  제1차 아편전쟁입니다. 청나라의 무기는 영국의 것에 비해 수준이 너무나도 떨어졌습니다. 결국 청나라의 배들은 영국의 군함들에 의해 무참하게 패배하고 맙니다. 승리자 영국과 패배자 청나라는 이후 난징조약(남경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전쟁의 승리자가 영국이었던 만큼 난징 조약은 철저히 영국에게 이득을 가져다 주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5개의 항구가 개방되었습니다. 상하이, 닝보, 푸저우, 샤먼, 광저우가 그러한 항구였습니다. 

그리고 공행 지도가 완전히 폐지되어 자유무역의 시대가 열렸고, 아편의 밀무역은 묵인되었습니다. 영국에 관세협정권이 부여되었으며, 영사재판권도 영국에 부여하고, 최혜국대우도 영국이 가졌습니다. 영국인이 청나라에서 죄를 지어도 재판은 영국영사가, 청나라가 다른 나라와 조약 시 유리한 것은 영국에. 모든 우위가 영국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홍콩이 할양됩니다. 홍콩 할양의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더욱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청군과 영국군의 전투

그렇다면 아편전쟁의 패배와 난징 조약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중국은 난징 조약을 전통적인 제국체제 속에서 이해했습니다. 최혜국대우는 "일시동인: 모든 사람을 동등히 사랑한다"로 이해하여 납득했고, 영사재판권은 어쨌든 우리 영토라는 생각으로 납득했습니다. 의외로 청나라에게 패전의식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청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난징 조약을 그저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우리 관대한 중화가 양보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결국 청나라는 아직도 중화사상에 기대어 위안삼고 합리적 판단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제1차 아편 전쟁을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아편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로 제2차 아편전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본 근대사 이야기! 계속됩니다. 앞으로도 재미있게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