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20. 11:32ㆍ일본의 근대사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일본에서는 두 가지 외교론이 대두합니다. 바로 영일동맹론과 러일협상론인데요,
이 글에서는 그러한 외교론의 등장과 일본의 선택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일동맹론을 말 그대로 영국과 일본의 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외교론으로,
고무라 주타로 외상 등 차세대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된 외교론입니다.
그들은 영국과 동맹을 맺어 영국과 일본이 함께 러시아를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러일협상론은 러시아와 일본이 협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토 히로부미나 이노우에 가오루 등 원로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된 이론입니다.
그들은 만한교환론, 즉 만주와 한반도에 대한 세력 범위 확정을 통해 러시아와 일본의 동아시아 관할권을 명확히 지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은 두 가지 의견 중에서 영일동맹론을 선택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당시 영국이 일본에 적극적으로 접근해왔기 때문입니다.
동맹의 한 축이 적극적으로 다가오자 영일동맹론에 더욱 탄력이 붙은 것입니다.
영국은 동아시아에서 영국 자국의 해군력에 대한 부담을 일본과의 화친을 통해 경감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국은 궁극적으로 일본을 통해 남쪽으로 다가오는 러시아 세력을 견제하려는 의도를 가졌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영일동맹이 체결됩니다.
일본은 원로들의 회의를 통해 영일동맹을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1902년 초에 이 동댕은 조인됩니다.
이 동맹은 전체 6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체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제1조는 청나라에 대한 영국의, 한국에 대한 일본의 정치 경제상 이익을 인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2조와 제3조는 제3국과의 정쟁시아 동맹국을 원조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일본은 이 조항을 통해 러시아와의 전쟁을 상정한 것입니다.
으로써 영국과 일본은 청과 한국에 대한 각자의 특수 이익을 서로 승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전한 식민지화는 경계하여, 독립과 영토 보전을 유지한다는 조건을 달기는 했습니다.
영일동맹은 영국과 일본이 힘을 합쳐 러시아에 대항한다는 구도를 형성하였고, 이러한 판세는 러일전쟁으로 이어집니다.
다음시간에는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준 러일전쟁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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