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5. 11:43ㆍ일본의 근대사
저번 글에서는 오쿠마 시게노부가 정부에서 축출되고 독자적으로 입헌개진당을 창설하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오래 이야기헤온 민권운동이 쇠퇴하고 변질되어 파국을 맞이하는 과정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정부의 민권운동에 대한 탄압은 점차 강화하였습니다.
집회 조례가 개정되었고, 신문지 조례도 개정되어 민권운동에 대한 정부의 압박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이에 정당간의 대립도 더욱 격화됩니다.
오쿠마를 총리로 둔 입헌개진당 과 이타가키를 중심으로 둔 자유당은 서로를 비난하며 대립합니다.
입헌개진당: 흥! 정부 돈으로 서양 순방하면서 놀고 먹은 아타가키가 중심인 당이 어딜!!!
자유당: 흥! 내란 혐의 받고 정부에서 쫓겨난 오쿠마 같은 놈을 당수로 둔 입헌개진당 놈들!!!!
이렇게 두 당이 서로 대립하자 두 당의 세력은 상호적으로 약화되었습니다.
이렇게 살기가 팍팍해지자, 급진론자들이 날개를 달고 활개치기 시작합니다.
사회가 불안하면 극단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역사적 교훈을 잘 보여줍니다.
일명 "격화 사건" 들이 발생하는데, 바로 무력을 사용하는 사건을 말합니다.
자유당 의원이 공격을 당한 후쿠시마 사건이나 정부전복을 시도한 군마 사건, 가바산 사건 등이 당시 일본 사회의 불안정한 정세를 잘 보여줍니다.
결국 자유민권운동은 오사카 사건으로 인해 파국을 맞이하게 됩니다.
놀랍게도 이 오사카 사건은 갑신정변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당시 조선의 개화 세력은 급진개화파와 온건개화파로 나뉩니다.
온건개화파는 청나라를, 급진개화파는 일본을 중심으로 두었습니다. 온건개화파는 청나라의 동도서기론, 즉 서양의 시술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전통을 유지하자는 주장에 찬성했고, 급진개화파는 일본의 메이지유신, 즉 정치체게와 문명도 받아들이자는 주장을 지지했습니다.
급진개화파 세력은 김옥균등의 인물이 합심하여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합니다. 그러나 청군의 개입과 일본군의 개입 중단으로 정변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자유당이 이러한 조선의 갑신정변에 반응한 것입니다.
자유당의 인물들은 조선의 개화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일본인 조선의 현재 정부( 청나라에 기울려는)를 붕괴시키고 조선의 개화를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하여 자유당의 인물들이 조선행을 시도했고, 적발당한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큰 타격을 받은 자유당은 해산되고, 입헌개진당마저도 이후 활동을 정지하면서 자유민권운동은 파국을 맞이합니다.
오늘의 역사적 교훈
1: 생활과 국가의 살림살이가 팍팍하고 어려워지면 급진론자들이 힘을 가진다.
대공황 이후의 독일과 일본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2: 경제와 정치는 떼려야 뗄 수가 없다
경제적 기반이 있어야 극단적인 모습이 줄어들고 국민의 정치에 대한 참여도가 높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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