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4. 12:08ㆍ일본의 근대사
저번 글에서는 국회개설운동에 대해서 다루어 보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정부의 국회 개설 시도와 입헌개진당의 탄생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메이지 3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이고 다카모리와 오쿠보 도시미치, 기도 다카요시입니다.
이 3명은 메이지 유신을 이끌었다고 하여 메이지 삼걸이라 불리는데요, 이 즈음에 들어 메이지 3걸은 모두 죽게 됩니다.
기도 다카요시는 1877년에 병사했고, 사이고 다카모리도 1877년에 전사했습니다.
오쿠보 도시미치는 1878년 암살당합니다.
메이지 유신을 이끌었던 거물들이 187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모두 죽은 것입니다.
이 메이지 3걸이 모두 죽은 후 남은 유력한 인물은 오쿠마 시게노부와 이토 히로부미였습니다.
이 두 사람이 메이지 3걸의 죽음 이후 권력을 양분하게 됩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내무경을, 오쿠마 시게노부는 참의 필두를 맡았습니다.
정부 내에서는 의회 구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참의직의 사람들이 헌법의견서를 제출하게 되는데, 야마가타 아리토모와 이노우에 가오루 등 후에 일본 근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 의견서를 제출합니다.
이토 히로부미도 헌법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오쿠마 시게노부도 헌법의견서를 제출합니다.
그가 제출한 헌법의견서는 상당히 급진적이었습니다.1년 후에 의원을 선출하고 1년 후에 의원을 개회하고 정당 내각제를 채용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그의 헌법 의견서는 상당히 급진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쿠마는 갑작스럽게 정부에서 축출됩니다.
바로 개척사 관유물 불하사건에 의해서 였습니다.
오쿠마가 훗카이도 개척사의 정부 관유물을 사쓰마인에게 헐값에 팔아넘긴 사건이 발각된 것입니다.
도시의 지식인들과 언론사들의 정부 비판이 가열되었고, 결국 오쿠마는 정부 전복 음모를 꾸몄다는 혐의를 받아 파면됩니다.
이후 일본 정부는 관유물 불하를 중지시키고 국회개설조서를 내립니다.
오쿠마를 정부에서 나와서 결국은 자신이주도하는 정당인 입헌개진당을 개설합니다.
일본 근대사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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