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과 평강공주의 실제 역사 속 모습을 살펴보자!

2021. 2. 18. 11:29역사 탐구 연구

최근 온달과 평강 공주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달이 뜨는 강이 방영되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바로 평강과 온달인데요, 이 글에서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평강 공주와 온달의 실제 역사 이야기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온달의 이야기는 삼국사기에 실려있습니다.

삼국사기 
삼국사기

그 기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겠습니다.
온달은 고구려 평강왕(평원왕) 시기의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고구려는 많은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고구려는 6세기 중반에 신라와 백제 연합군으로부터 한강 유역을 상실한 상황이었죠.
게다가 여러 반란과 내분이 겹쳐 고구려는 국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평원왕은 이러한 6세기의 고구려에 즉위하여 고구려의 국력을 다시 강하게 일으켜 세우려고 했던 임금입니다.

평원왕은 중원왕조의 공격에 대비하여 병장기를 수리하고, 군량을 비축하고, 장인과 무기를 양성한 군주였습니다.

그리고 일본에 사신을 파견하고 활발한 외교 활동을 펼쳐 고구려의 외교도 발전시켰습니다.

 

"온달에게나 시집을 가야겠구나!"

평원왕의 재위기에 온달이 있었습니다.

온달은 겉모습은 좋지 못했지만, 마음만큼은 밝았습니다.

그의 옷차림이 좋지 못했고 우스꽝스러웠기에, 그는 바보 온달로 불렸습니다.

한편, 평강왕에게는 어린 딸이 있었습니다.

그 어린 딸은 자주 울었는데, 평강왕이 딸을 놀리며 말하였습니다.

"너가 이렇게 울어대니, 바보 온달에게나 시집을 가야겠구나!"

평강왕은 자주자주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딸이 자라서 평강왕은 상부 고씨에게 시집보내려하자, 공주가 평강왕에게 말하였습니다.

"대왕께서 매번 말슴하시기를 '너는 온달의 아내가 되거라'했는데, 왜 말슴을 바꾸십니까?

왕은 없는 말을 하여선 안되는 것입니다. 저는 받들지 못합니다."

평강왕은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그럼 넌 너의 갈 길을 가거라!!"

온달산성의 성벽, 단양 소재

"나에게 다가오지 말라!"

평강왕의 말을 득고 공주는 보석이 박힌 팔찌 여러 개를 팔꿈치에 건 뒤에 궁궐을 나왔습니다.

온달의 집에 찾아간 공주는 온달의 노모를 만났습니다.

노모는 공주가 온달과는 어울리자 않고, 온달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공주가 산에 갔을 때 온달을 만났습니다.

공주는 온달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습니다.

온달은 화를 내었습니다.

"이런 행동은 여인의 행동이 아니다. 넌 필시 여우 혹은 귀신일 것이니, 나에게 다가오지 말라!"

온달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렸습니다.

공주는 홀로 와서 사립문 밖에서 잠을 청하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가서 자초지종을 더 자세히 이야기했습니다.

공주는 열렬히 설득하고 팔찌를 팔아 살림살이를 갖추었습니다.

단양 온달산성 성벽

공주는 온달에게 말했습니다.

" 시장의 말을 사지 말고, 나라의 말중 병들어 쫓겨난 말을 사세요."

온달은 그 말대로 하였습니다. 공주가 그 말을 부지런하게 기르고 먹이니, 그 말은 날로 살이 붙고 건강해졌습니다.

고구려에서는 해마다 봄 3월 3일이면 낙랑 언덕에 모여서, 사냥하여 잡은 짐승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었습니다.

그대에 고구려의 왕이 사냥을 갔는데, 온달도 자기가 기른 말을 타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온달이 항상 앞서고, 다른 사람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말을 잡았습니다.

왕은 온달을 보고 이름을 묻고 기이하게 여겼습니다.

후주(북주) 무제

북주의 군대를 무찌르다!

그런데 이때, 후주(북주)의 무제가 군대를 이끌고 요동을 침공하였습니다.

그러자 고구려의 왕은 군대를 이끌고 배산의 들에 나가서 싸웠습니다.

고구려 벽화 속의 군대

온달은 그 군대의 선봉에 나서 많은 적을 죽였습니다. 그러자 고구려의 군대가 기세를 타고 크게 이겼습니다.

공로가 온달이 제일이었습니다.

왕은 "이 사람이야말로 나의 사위다!"하고 예를 다하여 온달을 대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온달에게 벼슬을 주어 대형으로 삼았습니다.

그리하여 왕의 온달에 대한 총애는 너무나도 두터워졌습니다.

단양 온달산성 전경

"영토를 되찾겠다!!!'

이후, 평원왕을 이어 영양왕이 즉위하였습니다.

온달은 영양왕에게 아뢰었습니다.

지금 신라가 우리 고구려의 한수 이북 땅을 차지하여 자기들의 군현으로 삼으니, 그 지역 백성들이 한을 품고 부모를 나라를 잊어버린 적이 없습니다. 대왕께서 군사를 주시면 제가 우리의 영토를 되찾겠나이다."

영양왕은 이러한 온달의 요청을 허락하였습니다.

온달은 군사를 이끌고 떠날 때 말하였습니다.

"계립현과 죽령 서쪽의 영토를 되찾지 못한다면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온달은 아단성 밑에서 신라군과 싸우다가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서 죽고 말았습니다.

아단성은 단양의 온달산성 혹은 서울의 아차산성으로 추정됩니다.

아차산성

온달의 장사를 지내려는데, 온달의 관이 움직이지를 않았습니다.

공주가 관을 만지며 말했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이미 결정됐으니, 아아!! 돌아가십시다"

그제서야 관을 드러 묻을 수가 있었습니다.

왕은 이를 듣고 매우 비통해하였습니다.

이렇게 온달은 고구려의 장수로써 명예로운 최후를 맞았습니다.

온달의 이야기는 삼국사기에 담겨 현재까지도 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