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8. 11:28ㆍ삼국의 유물 유적
백제의 제25대 왕 무령왕, 그는 누구인가?
이 글에서 다룰 인물은 무령왕의 금제관식입니다. 이 유물의 가치를 진정으로 알고, 이 유물에 이입하기 위해서는 이 금제관식의 주인이었던 백제의 왕 무령왕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사진에 보이는 화려한 금제관식의 주인이었던 무령왕은 대체 누구일까요? 무령왕은 백제의 제25대왕입니다. 그런데 무령왕 이전에 백제는 많은 국가적 역경을 견뎌야 했습니다. 백제의 수난은 한성의 상실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고구려의 장수왕은 고구려의 수도를 평양으로 천도하고 남진정책을 추진합니다. 이는 백제와의 군사적 충돌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백제는 한성을 상실하고 말았고, 당시 백제의 왕 개로왕은 고구려군에 의해 살해당하고 맙니다.
21년(서기 475) 가을 9월, 고구려왕 거련(巨璉, 장수왕)이 병사 3만 명을 거느리고 와서 한성을 포위하였다. 임금이 성문을 닫고 나가 싸우지 못하였다. 고구려 사람들이 병사를 네 방면의 길로 나누어 협공하고 또 바람을 이용해서 불을 질러 성문을 태우니, 사람들이 두려워 성 밖으로 나가 항복하려는 자도 있었다. 임금은 상황이 어렵게 되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기병 수십 명을 거느리고 성문을 나가 서쪽으로 달아났는데, 고구려 병사가 추격하여 임금을 살해하였다.
二十一年 秋九月 麗王巨璉帥兵三萬 來圍王都漢城 王閉城門不能出戰 麗人分兵爲四道 夾攻 又乘風縱火 焚燒城門 人心危懼 或有欲出降者 王窘不知所圖 領數十騎 出門西走 麗人追而害之
[네이버 지식백과] 개로왕 [盖鹵王]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김부식, 박장렬, 김태주, 박진형, 정영호, 조규남, 김현)
이후 백제의 문주왕은 웅진으로 도읍을 옮기고, 백제는 움츠러들게 됩니다. 무령왕은 이러한 백제의 위기의 시간에 즉위했습니다. 무령왕은 이러한 위기의 백제를 다시 되살리는데 지대한 공을 세우게 됩니다.
무령왕은 우선 백가의 난을 진압하여 백제의 내실을 굳건히 했습니다. 국가 내부의 반란을 진압하고 타국을 상대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춘 것입니다. 그리고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여 왕권을 강화하였습니다.
봄 정월, 좌평 백가가 가림성(加林城)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키니 임금이 병사를 거느리고 우두성(牛頭城)에 이르러 한솔 해명(解明)을 시켜 토벌하게 하였다. 백가가 나와서 항복하자 임금이 백가의 목을 베어 백강(白江, 금강)에 던졌다.
武寧王 諱斯摩或[云隆] 牟大王之第二子也 身長八尺 眉目如畵 仁慈寬厚 民心歸附 牟大在位二十三年薨 卽位 春正月 佐平苩加 據加林城叛 王帥兵馬 至牛頭城 命扞率解明討之 苩加出降 王斬之 投於白江
[네이버 지식백과] 무령왕 [武寧王]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김부식, 박장렬, 김태주, 박진형, 정영호, 조규남, 김현)
무령왕은 이후 고구려의 침입을 여러차례 격파합니다. 고구려와 말갈이 함께 공격해오자 이를 격퇴하기도 했습니다.
겨울 10월, 고구려 장수 고로(高老)가 말갈과 모의하여 한성을 공격하기 위하여 횡악 아래에 와서 주둔하니 임금이 군대를 내어 싸워서 그들을 물리쳤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령왕 [武寧王]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김부식, 박장렬, 김태주, 박진형, 정영호, 조규남, 김현)
한편, 무령왕은 중국의 남조 양나라와는 활발한 교역을 펼쳤습니다. 양나라와 활발한 조공 무역을 펼쳤고, 양나라는 무령왕을 영동대장군으로 책봉하였습니다. 이러한 백제의 활발한 대중국외교는 양직공도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12월, 양 고조(高祖)가 조서를 보내 임금을 책봉하여 말하였다.
“행도독백제제군사진동대장군백제왕(行都督百濟諸軍事鎭東大將軍百濟王) 여륭(餘隆)은 바다 밖에서 번방을 지키며 멀리 와서 조공을 바치고, 그 정성이 지극함에 이르니 짐은 이를 가상히 여긴다. 마땅히 옛 법에 따라 이 영예로운 책명을 수여하여 사지절도독백제제군사영동대장군(使持節都督百濟諸軍事寧東大將軍)으로 삼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령왕 [武寧王]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김부식, 박장렬, 김태주, 박진형, 정영호, 조규남, 김현)
이렇게 많은 노력을 통해 백제를 부흥시킨 군주, 무령왕, 그의 무덤은 현대에 무령왕릉이라는 이름으로 발굴되어 우리에게 백제의 위엄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창구의 역할을 합니다. 이 글에서 다루는 무령왕의 금제관식도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것입니다. 발견 당시 무령왕의 머리 부근에서 포개어진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출처: 문화재청
무령왕릉의 금제관식은 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번적번쩍 금빛을 발하는 유물의 자태는 환희를 불러일으킵니다. 이 금제관식은 왕관을 꾸민 장식입니다. 원래 왕관 자체는 섬유질이었다고 추측되나 섬유질은 썩어 없어지고 금으로 된 장식만 남은 것입니다. 이 금제관식은 순금으로 된 판을 오려서 만든 것입니다. 금판을 오리고 뚫어서 덩굴의 무늬를 조각해내고, 줄기가 좌우로 벌어져 있으며, 줄기의 중간에는 꽃의 무늬를 장식했습니다. 뻗어나가는 금빛 줄기와 피어나는 금꽃의 모습은 마치 황금 화염을 연상케합니다. 두 개의 가지는 아래를 향하여 변화를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영락(구슬 모양의 꾸미개)를을부착하여 화려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이 금제관식의 구슬 모양 꾸미개인 영락은 각 지름이 5mm정도 인데, 금판에 작은 구멍을 만들고 금실로 꿰어 부착한 것입니다. 이러한 영락 장식은 이 무령왕의 금제관식에서 무려 127개에 달합니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이 금제관식은 백제의 왕관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을 증명합니다. 구당서에는 백제의 왕관이 "검은 천으로 된 왕관에 금꽃을 장식하고..."라는 묘사를 하는데, 이 무령왕 금제관식이 그러한 기록을 뒷받침하는 것입니다. 무령왕 금제관식은 무수한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 제15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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