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공주 정혜공주의 무덤! 발해 모습 조금이라도 보여주다!

2021. 2. 3. 09:28남북국의 유물 유적

정혜공주묘 외경

발해 공주의 무덤이 발견되다

정혜공주묘는 발해의 제3대왕 문왕의 둘째 딸인 정혜공주의 무덤입니다. 발해는 역사 자료가 많지 않아 유적의 발굴이 매우 중요한데요, 정혜공주묘의 발굴을 통해 우리는 발해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혜공주묘는 1949년에 출토되었습니다. 무덤의 위치는 동모산 돈화현 육정산입니다.

실측도 출처: 국립문화재연구소

 

정혜공주묘 무덤 안길 출처: 국립문화재연구소

정혜공주묘는 굴식 돌방 무덤입니다. 굴식 돌방 무덤은 판 모양의 돌을 사용해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덮어 굴처럼 보이게 한 무덤을 말합니다. 굴식 돌방 무덤은 고구려의 무덤 양식이었습니다. 고구려는 초기에 돌무지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장군총이 대표적인 돌무지 무덤의 예시입니다. 시신을 지상에 두고 돌을 쌓아 올려 만든 것이 돌무지 무덤인데, 이후 고구려의 무덤양식은 돌로 방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덮는 굴식 돌방무덤으로 무덤 양식을 바꾸었습니다. 그러한 고구려의 굴식 돌방 무덤 양식을 계승한 것은 바로 발해였습니다.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였던 것입니다.

정혜공주묘는 무덤칸이 안길과 안칸으로 나뉘고, 안길은 바깥의 바깥길로 이어집니다. 무덤칸은 굴식 돌방 무덤이라는 양식답게 돌로 만들어졌습니다. 벽면에는 벽화를 그린 흔적이 있습니다.

정혜공주묘 안칸 천정

정혜공주묘의 천장은 모줄임 천장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줄임 천장은 사각형의 돌 위에 마름모 모양으로 계속 쌓아올려 천장을 형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모줄임 천장 양식도 고구려에서 유행한 것인데, 이러한 모줄입 천장 양식도 발해가 계승한 것입니다. 정혜공주묘의 굴식 돌방무덤과 모줄임 천장이라는 특징은 발해가 고구려의 건축양식을 계승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정혜공주묘 돌사자상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정혜공주묘의 돌사자상 정면
정혜공주묘 돌사자상 측면 출처: 국립문화재연구소

 

정혜공주묘에서는 발해 돌사자상도 출토되었습니다. 발해의 돌사자상은 앞다리를 쭉 피고 앉아있어 북방을 호령한 해동성국 발해의 위엄이 드러납니다. 굳건한 기상에서 고구려의 영향을 받고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historykorea676.tistory.com/153

 

발해의 돌사자상, 기상을 보이다!

석조에 사자의 위엄을 불어넣다 발해 돌사자상은 발해의 굳건한 기상을 보여주는 조각입니다. 이 발해의 조각상은 발해의 제3대왕인 문왕의 두 번째 딸인 정혜공주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입니다

historykorea676.tistory.com

정혜공주묘 묘비 출처: 국립문화재연구소

정혜공주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묘지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묘지석에는 정혜공주의 사망과 매장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 이 기록에서는 문왕의 연호인 보력이 확인되어 발해의 문왕이 "보력"이라는 연호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호를 정혜공주(貞惠孝主)라 하였다. 보력 7년 겨울 11월 24일 갑신일(甲申日)에 진릉(珍陵)의 서쪽 언덕에 배장하였으니, 이것은 예의에 맞는 것이다. (중략) 이에 명문(銘文)을 새겼으니 다음과 같도다. 위대하고 빛나는 업적을 세운 조상들은 천하를 통일하였고, 상주는 것을 분명히 하고 벌내리는 것은 신중히 하여 그 인정(仁政)이 사방에 미쳤다. 부왕(父王)에 이르러서는 만수무강하여 3황(皇) 5제(帝)와 짝하였고 주(周)나라 성왕(成王), 강왕(康王)을 포괄하였다. 생각컨대 공주가 태어나매 어려서부터 진실로 아름다웠고, 비상하게 총명하고 슬기로워 널리 듣고 높이 보았다. 궁궐의 모범이 되었고 동궁(東宮)의 누나가 되었으니, 옥 같은 얼굴은 무궁화만이 비길 수 있었다. (하략) 보력(寶曆) 7년 11월 24일.

출처; 발해사 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정혜공주묘는 굴식 돌방무덤이며, 모줄임 천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굴식 돌방 무덤과 모줄임 천장이라는 특징을 통해 발해의 무덤이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정혜공주묘에서 출토된 돌사자상고구려의 기상을 이어받은 발해의 위엄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묘비의 명문에서는 발해 문왕이 사용한 연호인 보력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정혜공주 묘를 통해 발해의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