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오랜 수도 상경 용천부!!!

2021. 2. 2. 09:23남북국의 유물 유적

상경성 평면도. 가운데의 큰 길은 '주작대로'로, 당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출처: 문화재청

상경 용천부는 발해의 대부분의 시기동안 수도의 역할을 했습니다. 처음 발해는 동모산에서 건국되었습니다.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세력을 결집하여 동모산에 진국을 세우게 됩니다. 나중에 진국은 곧 발해가 되었고, 이후 발해는 무왕 시기에 수도를 중경 현덕부로 옮기게 됩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발해의 세력은 점점 강해져 더욱 큰 규모의 수도를 필요료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발해는 고구려와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거대한 궁궐을 건립하고 상경 용천부로 수도를 옮기게 됩니다. 발해가 상경성으로 천도한 해는 756년 무렵, 문왕의 치세였습니다. 이후 동경이 780년대 후반부터 794년경까지 수도였던 것을 빼고는 상경 용천부가 발해의 수도였습니다. 상경 용천부의 상경성은 발해의 중심지로서 '해동성국' 발해의 번영을 보여주는 궁전이었던 것입니다.

발해는 당나라의 장안성을 참고하여 상경성을 지었습니다. 그 증거는 바로 주작대로의 존재입니다. 위 사진의 상경성 평면도에는 가운데에 큰 길이 하나있습니다. 그 길이 주작대로입니다. 상경성은 외성과 내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외성의 남문에서 황성의 남문까지 큰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이 바로 주작대로입니다. 주작대로는 발해가 당나라의 장안성을 참고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상경성의 궁성 서구 침전터 가운데방
상경성의 온돌 장치, 고구려의 문화를 계승했습니다.
상경성 궁성 서구 침전터 서쪽방
상경성 궁성 서구 침전터 동쪽방
상경성 궁성 서구 침전터 실측도
상경성 궁성 서구 침전터 온돌 측면
상경성 아궁이 출처: 국립문화재연구소

상경성은 주작대로를 통해 당의 영향을 받았지만, 고구려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상경성의 궁성 서구 침전터에서는 온돌 장치가 발견되었습니다. 온돌은 고구려의 문화인데, 발해의 수도인 상경성에서도 이러한 온돌이 발견된 것입니다. 이는 발해가 고구려의 문화양식을 계승한,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였다는 점을 알리는 하나의 증거가 됩니다.

상경성 제1절터 본전
상경성 1절터
상경성 제1절터 실측도

출처: 국립문화재연구소

상경성 궁궐터 내부에는 많은 사찰이 지어졌습니다. 주로 높은 단을 건립하고, 그 위에 금당을 지은 뒤, 오른쪽과 왼쪽에 사찰의 건물을 배치하는 방식을 이용했습니다. 이는 발해에서 불교 문화가 크게 융성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발해의 수도를 상경으로 옮기고 발해를 발전시킨 문왕의 존호가 정효공주 묘지명에서 발견되었는데, 문왕의 존호는 "대흥보력효감금륜성법대왕"으로, '금륜'과 '성법'이라는 불교식 칭호가 들어있어 발해 불교도 고구려 불교를 계승하여 매우 유성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발해의 임시 수도였던 동경 용원부에서는 이불병좌상이 발견되어, 발해 불교의 융성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함화 4년명 비상에서도 불교의 불교미술과 불교를 통해 죽은 자를 기리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많은 유물과 기록을 통해 발해의 불교는 살아남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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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병좌상 발해

발해, 고구려의 불교미술을 잇다 이불병좌상은 발해의 불교 미술을 대표하는 유물입니다. 이불병좌상은 두 명의 부처가 나란히 않아있는 불상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발해의 불교미술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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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화 4년명 비상, 발해의 황제국적 면모를 보이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발해가 황제국임을 밝히다! 함화 4년명 비상은 발해의 단면을 탐색할 수 있게 하는 매우 중요한 유물입니다. 이 유물을 통해 우리는 발해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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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대표 불상 이불병좌상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함화 4년명 비상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상경성 제1절터의 발해 치미 출처: 극립문화재연구소

상경성 제1절터에서는 발해의 치미도 출토되었습니다. 기와 지붕을 장식하며 발해의 위엄을 드러냈습니다. 발해의 건축양식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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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건축의 흔적, 발해 치미

발해 건축의 거대한 흔적이 남다 발해 치미는 발해의 건축 미술을 보여주는 유물입니다. 발해 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치미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데요, 치미는 고대의 목조 건축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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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성 제2절터의 발해 석등
상단부
하단부 출처: 국립문화재연구소

상경성의 2절터에서는 발해의 석등도 발견되었습니다. 석등의 높이는 6.3m입니다. 발해 목조 건축 양식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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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석등, 발해의 기상을 보이다

출처: 포토뉴스 발해 석등은 발해의 대표적인 유적입니다.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이며, 만주를 다스렸고, 당과 교류하며, 독자적인 문물을 발전시킨 국가입니다. 발해 석등은 그러한 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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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상경성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상경 용천부는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발해의 수도였습니다. 상경성은 발해와 연관된 여러 국가의 영향을 받아 지어졌습니다. 상경성은 외성과, 황성, 궁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외성의 남문과 황성의 남문을 이어주는 커다란 길은 주작대로입니다. 주작대로는 당의 장안성의 구조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입니다. 즉, 발해의 상경성은 당나라의 장안성에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상경성에는 발해에 대한 고구려의 영향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경성의 궁성 서구 침전터에서는 온돌장치가 발견되었는데, 온돌은 고구려의 문화이므로 발해는 고구려의 문화를 계승한 것입니다. 그리고 상경성에서는 많은 절터도 발견되었는데 이는 발해에서 불교가 무척 융성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문왕의 존호와 이불병좌상, 함화 4년명 비상 등에서도 확인됩니다. 발해의 사찰은 먼저 높은 단을 만들고, 그 위에 금당을 지어 좌우로 건물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건립되었습니다. 또한, 상경성에서는 발해의 치미와 석등도 발견되었습니다. 발해의 치미를 통해 해동성국의 위엄이 드러납니다. 발해 석등은 그 높이가 6미터에 육박하고, 석등을 통해 발해의 목조 건축 양식을 알 수 있습니다. 상경성은 발해에 대한 당과 고구려의 영향, 융성한 발해 불교, 발해의 발달한 건축기술을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유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