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1. 12:27ㆍ삼국의 유물 유적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첨성대
첨성대는 신라의 대표적인 유적입니다. 경주에 가서 신라의 유적을 이야기할 때는 첨성대가 빠지지 않습니다. 첨성대라는 이름은 별을 관측하기 위해 높이 쌓은 대를 의미합니다. 고대의 국가들은 천문현상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하늘의 별자리는 국왕의 정치나 국가의 안위를 대변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고대 국가들도 천문 관측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현재 고구려와 백제의 천문대가 남아있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고대의 천문관측을 대표하는 유물은 바로 첨성대입니다. 첨성대는 역사적 기록에도 등장합니다.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는 첨성대가 선덕여왕의 치세에 만들어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別記云是王代鍊石築瞻星臺
별기에 따르면 이 왕(선덕여왕)의 치세에 석축을 쌓아 첨성대를 만들었다고 전한다.
- 삼국유사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첨성대의 형태와 구조
첨성대의 높이는 9.17m 이고, 밑지름은 4.93m 이며, 윗지름은 2.85m 입니다. 하단부의 남쪽 허리 부분에 변이 1m인 정사각형 문이 달려있습니다. 모양은 원통형이고, 남쩍에 있는 문에는 사다리를 걸어 두었던 자리가 있습니다. 전체 돌의 개수는 401개이며, 부채꼴 모양의 돌을 사용하여상층부와 기단을 빼고 총 27단으로 건축했습니다. 12단까지는 흙으로 차있고, 19단-20단에서와 25단-26단에서는 정자형 장대석(井字石)이 걸쳐 있습니다. 이 정자석의 양쪽 끝은 밖으로 튀어 나와 있습니다. 꼭대기에는 정자석이 2단으로 올려져 있습니다. 바로 그 2개의 정자석 위에 천문 관측기구를 올려 놓았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첨성대의 용도를 찾아서
첨성대의 용도를 두고서는 많은 의견이 제기되었습니다. 천문 관측에 사용되었을 거라는 추측이 과거에도 지배적이었지만, 천문 관측이 아니라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이견도 제기되었습니다. 천문 관측 용도가 아니라 정치,종교적 상징이나 제사를 위해, 또는 선덕여왕의 신성성을 드러내기 위해 건축되었을 것이란 주장도 제기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이견들에도 불구하고 삼국유사의 정식 기록과 신라의 천문기록들을 토대로 첨성대는 천문대라는 것이 정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첨성대가 천문대라는 점이 확고해진 것엔 신라의 천문관측에 대한 연구가 크게 공헌했습니다. 한국천문연구원의 김봉규 박사는 신라의 천문 기록들을 연구한 결과, 첨성대의 건립 이후 신라의 천문 관측 기록이 양적 측면에서 대폭 증가했고, 기록도 매우 상세해졌다고 밝혔습니다. 게다가 신라 천문 기록에 등장하는 유성들 또한 모두 첨성대 주변에서 낙하한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김봉규 박사의 연구를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1) 첨성대의 건립 이후 기록에 남은 유성들이 모두 첨성대 근처로 낙하했다.
2) 첨성대의 건립 이후 천문 관측 기록의 양은 10배가 넘게 늘었다. 질적 측면에서도 첨성대 건립 이후 전문적인 천문가들이 장기간 관측해야 기록이 가능한 천문 현상에 대한 기록들도 늘어난다.
3) 삼국사기에는 신라가 별에 대한 제사는 본피유촌에서, 해와 달에 대한 제사를 문열림에서, 오행성에 대한 제사는 영묘사에서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결론적으로 제사는 첨성대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지낸 것이다.
입추 후 진일(辰日)에 본피유촌(本彼遊村)에서 영성(靈星)에 제사를 지냈다.
문열림에서는 일월제(日月祭)를 지냈고, 영묘사(靈廟寺) 남쪽에서는 오성제(五星祭)를 지냈고, 혜수(惠樹)에서는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
-삼국사기 -제사 -신라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원문으로 읽는 삼국사기
4) 조선시대 천문대인 관천대와 신라의 경주 천문대는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이는 조선이 신라의 첨성대를 참고하여 천문을 관측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현재는 첨성대가 천문대로, 천문을 관측하는 용도로 이용되었다는 점이 확고히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첨성대는 동양의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그 가치가 빛나게 된 것입니다.
성대는 천문을 관측하기 위한 장소였습니다. 그렇다면 천문은 고대에 어던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요? 천문은 우선 농사 시기를 결정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정치적으로는 국가의 길흉을 점치는데도 이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천문 관측 자료는 태양과 달과 행성의 운행을 관측하여 역법을 제작하는 데에도 필수적인 요소였습니다. 이렇게 고대에 천문은 경제, 정치, 학문 등 모든 방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첨성대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첨성대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이며, 고대의 높은 과학수준을 잘 보여주는 큰 가치를 지닌 유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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