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 국보 118호

2021. 1. 11. 09:34삼국의 유물 유적

고구려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출처: 문화재청

고구려의 반가사유상도 있었다!

국보 118호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고구려의 불교 미술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입니다.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의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유물입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신라의 것으로 여겨지는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입니다. 그런데 고구려에도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있습니다. 바로 국보 118호로 지정된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입니다. 이 유물은 많지 않은 고구려의 불상 유물입니다. 이 불상은 평양시 평천리에서 공사 중에 출토된 불상입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불에 타고, 녹슬고, 침식된 흔적이 뚜렷합니다. 이 불상은 고구려의 것임이 명하다는 점에서 귀중한 가치를 지니는 유물입니다.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 고구려, 백제, 심라의 삼국 공통으로 만들어 졌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국보 118호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

사유하는 인자한 불상

고구려의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을 살펴보면, 삼산관을 착용하고 있으며, 다른 반가사유상 처럼 입에는 잔잔한 미소가 배어 있습니다. 상반신에는 옷을 입고 있지 않아 신체의 윤곽이 보이고, 하반신에는 옷을 입고 있어 옷의 주름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오른쪽 팔이 떨어져 나간 상태지만 다른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처럼 손을 턱에 괴고 생각하는 자세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 고구려의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6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고구려의 유물임이 명확하다는 점에서 귀중한 가치를 지닙니다. 국보 118호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고구려도 반가사유상을 제작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국보 제78호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

출처: 문화재청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

출처: 문화재청

국보 118호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

삼국 불교 미술의 정수, 반가사유상

대표적인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들은 삼국시대 불교 미술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입가의 미소는 편안함을 자아내고, 옷주름의 표현은 사실적이고 아름답습니다. 더욱 중요한 점은 이러한 반가사유상이 삼국 문화의 공유를 시사한다는 점입니다. 78호 반가사유상은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제작되었다는 주장이 각각 대립하고 있고, 83호 반가사유상은 신라에서 제작되었다는 것이 매우 유력합니다. 그리고 118호의 고구려 반가사유상도 존재하고 있어, 이러한 반가사유상이 삼국 문화를 통괄하는 상징적 요소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

출처: 문화재청

금동 연가 7년명 여래입상

출처: 문화재청

원오리 소조보살입상

출처: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구려의 불교미술

고구려는 소수림왕 시기에 전진으로부터 불교를 수용했습니다. 이후 고구려는 사찰을 건립하고 불교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2년(서기 372) 여름 6월, 진(秦)나라의 왕 부견(苻堅)이 사신과 승려 순도(順道)를 파견하여 임금에게 불상과 경문을 보내 왔다. 임금이 사신을 보내 답례로 토산물을 바쳤다.

5년(서기 375) 봄 2월, 비로소 성문사(省門寺)를 창건하여 순도로 하여금 머무르게 하였다. 또한 이불란사(伊弗蘭寺)를 창건하여 아도를 머무르게 하였으니, 이것이 해동 불법의 시초가 되었다.

원문으로 읽는 삼국사기

고구려의 여러 불상들은 고구려의 찬란한 불교 예술을 뒷받침합니다. 반가사유상이 제작되었으며, 금동으로 화려한 광배와 연꽃 대좌를 표현한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 인자한 미소를 보여주는 원오리 소조보살입상 등 많은 불상이 제작되었습니다. 다채로운 양식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고구려의 불상들은 고구려의 문화를 파악함에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