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덕흥리 고분

2021. 1. 16. 12:29삼국의 유물 유적

덕흥리 고분 외경

출처: 국립문화재연구소

덕흥리 고분은 고구려의 고분입니다. 고구려에는 많은 무덤이 있었습니다. 고구려 무덤의 특색은 바로 벽화입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에는 고구려의 문화, 고구려의 무예, 고구려의 종교, 고구려의 관료, 고구려의 생활, 고구려의 군사, 고구려의 천문 등 다양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이 글에서 다루는 덕흥리 고분에서도 그러한 고구려의 다채로운 면모가 보입니다. 그럼이제 덕흥리 고분의 벽화를 살펴보고, 덕흥리 고분의 주인인 유주자사 진의 정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길리
성성
벽독
부귀
비어
견우와 직녀

출처: 국립문화재연구소

덕흥리 고분에는 수많은 상상의 동물과 신화의 존재들이 벽화로 그려져있습니다. 견우와 직녀도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길리, 벽독, 성성, 비어 등의 신비하고 환상적인 동물들도 그려져 있습니다.

사냥의 모습

출처: 국립문화재연구소

덕흥리 고분의 벽화에는 고구려의 사냥 모습도 담겨져 있습니다. 말을 타다 등을 돌려 활을 쏘는 모습은 고구려의 뛰어난 무예실력과 상무적 기풍을 강하게 드러냅니다.

마사희

출처: 국립문화재연구소

말을 타며 활을 쏘는 무예인 마사희의 모습을 담은 벽화도 있습니다. 붓을 들어 성적을 기록하는 사람도 있고, 경기를 구경하는 사람도 있습니다.고구려인들은 사냥과 지속적인 궁술 훈련을 통해 무예 실력을 향상시켰던 것입니다.

수레의 모습

덕흥리 고분벽화에는 고구려인들이 수레를 이용하는 모습도 담겨져 있습니다.

칠보행사의 모습

출처: 국립문화재연구소

덕흥리 고분의 안칸 동벽에는 불교 행사인 칠보행사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칠보는 불경에서 등장하는 7가지 보석을 의미합니다. 주로 금, 은,유리, 파리, 차거, 붉은 진주, 마노를 칠보라 합니다. 그리고 덕흥리 고분에는 연꽃의 무늬도 그려져 있어 고구려의 문화에 불교가 깊이 스며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덕흥리 고분의 주인공
덕흥리 고분 묘지명
13군의 태수

출처: 국립문화재연구소

덕흥리 고분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바로 이 고분의 주인입니다. 다행히 묘지명이 남아 있어 이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있습니다. 묘지명은 아래와 같습니다.

▨▨군(郡) 신도현(信都縣) 도향(都鄕) 중감리(中甘里) 사람이며 석가문불(釋迦文佛)의 제자인 ▨▨씨(氏) 진(鎭)은 역임한 관직이 건위장군(建威將軍)·국소대형(國小大兄)·좌장군(左將軍)·용양장군(龍驤將軍)·요동태수(遼東太守)·사지절(使持節)·동이교위(東夷校尉)·유주자사(幽州刺史)이었다. 진(鎭)은 77세로 죽어, 영락(永樂) 18년 무신년(戊申年; 408년) 초하루가 신유일(辛酉日)인 12월 25일 을유일(乙酉日)에 (무덤을) 완성해서 영구(靈柩)를 옮겼다. 주공이 땅을 상(相)하고 공자(孔子)가 날을 택했으니 무왕이 시간을 선택했다. 날짜와 시간을 택한 것이 한결같이 좋으므로 장례 후 부(富)는 7세(七世)에 미쳐 자손(子孫)은 번창하고 관직도 날마다 올라 위(位)는 후왕(侯王)에 이르도록 하라. 무덤을 만드는 데 만 명의 공력이 들었고, 날마다 소와 양을 잡아서 술과 고기, 쌀은 먹지 못할 정도이다. 아침 식사로 먹을 간장을 한 창고 분이나 보관해 두었다. 기록해서 후세에 전하며, 이 무덤을 방문하는 자가 끊어지지 않기를.

이 무덤의 주인은 유주자사 진입니다. 비록 짧은 묘지명이어서 진의 생애를 파악하는 것은 힘들지만, 그가 있었던 관직과 그의 사망과 매장은 알 수 잇습니다. 우선, 이 묘지명에서는 광개토대왕의 연호인 영락이 등장합니다. 광개토대왕이 사용한 연호인 영락은 광개토대왕에서도 등장합니다. 영락 연호는 덕흥리 고분과 광개토대왕릉비에서 모두 등장하는 명확한 고구려의 독자 연호인 것입니다.

진이 역임한 관직은 건위장군, 국소대형, 좌장군, 용양장군, 요동태수, 사지절, 동이교위, 유주자사 였습니다.

그리고 고구려의 관료들인 태수와 내사들이 업무를 보고하는 광경도 벽화에 담겨 있습니다. 이들 13개 태수에 대해서는 벽화에 기록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태수들의 인상착의는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이러한 기록을 통해 고구려의 관직체계와 통치 지역을 알 수 있습니다.

(1) 연군(燕郡) 태수

(2) 범양(范陽) 내사

(3) 어양(漁陽) 태수

(4) 상곡(上谷) 태수

(5) 광령(廣寧) 태수

(6) 대군(代郡) 내사

(7) 북평(北平) 태수

(8) 요서(遼西) 태수

(9) 창려(昌黎) 태수

(10) 요동 태수

(11) 현도 태수

(12) 낙랑 태수

(13) 해독 불가능

무덤의 주인 진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개의 의견이 있습니다. 진이 중국에서 귀화한 사람이라는 주장과, 진이 순수한 고구려의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먼저 진이 중국인 망명객이라는 주장입니다.이 주장의 근거는 진의 출신지인 신도현이 중국의 지명이라는 것입니다. 중국 하북성의 안평군 신도현이 진의 출신지라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그가 역임했던 요동태수와 유주자사에서 요동과 유주가 중국의 지명이었다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진은 중국에서 고구려로 건너와, 고구려 고유의 관직인 국소대형을 맡아 고구려의 관직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진이 고구려 사람이었다는 주장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먼저, 진의 출신지인 신도현은 고구려의 저역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고려사의 신도현이라는 지명이 등장하는데, 진은 그곳의 출신인물이라는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두 주장 모두 명백히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 무덤의 주인 진의 출신지를 밝히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덕흥리 고분 북벽 천청
덕흥리 고분 북벽 천정

출처: 국립문화재연구소

덕흥리 고분의 천정에는 북두칠성의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북두칠성 옆의 별인 보성도 표기되어 있어 눈길을 끕니다. 보통 보성은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러한 보성을 그린 것을 보아 고구려의 천문 관측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무덤칸 실측도
서부 실측도
동부 실측도

출처: 국립문화재연구소

덕흥리 고분은 우리에게 고구려에 대한 많은 지식을 주는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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