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화 4년명 비상, 발해의 황제국적 면모를 보이다!

2021. 1. 21. 10:01남북국의 유물 유적

함화 4년명 비상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발해가 황제국임을 밝히다!

함화 4년명 비상은 발해의 단면을 탐색할 수 있게 하는 매우 중요한 유물입니다. 이 유물을 통해 우리는 발해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함화 4년명 비상은 비상형 오존불입니다. 비상형은 명문과 불상이 비에 새겨져 있는 모양이라 하여 비상형이고, 오존불은 다섯 명의 오존이 묘사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일본의 오쿠라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함화 4년명 비상은 이름 그대로 함화 4년에 조성되었는데요, 함화 4년은 발해의 제11대왕 대이진왕 (재위 831-857) 시기에 사용된 연호이므로 함화 4년은 834년입니다. 이 비상의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명문인데요, 명문의 원문은 이렇습니다.

"함화 4년 윤5월 8일에 과거 허왕부의 참군(參軍)이자 기도위(騎都尉)였던 조문휴의 어머니 이씨가 삼가 아미타불과 관음, 대세지 등의 보살존상을 조성하였으니, 불문(佛門)의 권속들이 모두 6바라밀을 실천하고, 불가의 창생들이 함께 8정도(正道)를 뛰어넘기를 바라노라. 이에 기리는 글을 짓는다. 크도다 불법의 진리여, 지극하도다 올바른 깨달음이여. 4생(生)의 장애를 뚫고 지났으며, 5탁(濁)의 세계를 배타고 건넜도다. 이는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사라지지도 않고 생겨나지도 않는 것이니, 자비로운 구름이 영원히 드리우고, 지혜로운 태양이 항상 밝으리라."

[네이버 지식백과] 발해 함화 4년명 비상 [咸和 4年銘 碑像] (e뮤지엄)

위 명문에서 주목할 만한 요소는 바로 '허왕부'입니다. 허왕부가 존재했다는 점은 왕의 위에 황제가 존재했다는 점을 의미하며, 이는 발해가 자신을 황제의 국가로 인식했음을 보여줍니다. 즉, 발해는 황제국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 비상을 통해 문헌상에 존재했던 대이진 왕의 연호 '함화'가 고고학적으로 입증되어, 발해가 당의 연호가 아닌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것이 역사학과 고고학의 양면에서 완벽히 증명되었습니다.

'함화' 연호와 '허왕부'의 존재, 이 두 가지 요소가 바로 발해는 황제국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이 함화 4년명 비상에서의 연호 함화와 허왕부의 존재, 발해 공주의 묘지명에서 발견된 "황상"이라는 칭호는 발해의 황제국적 면모를 잘 보여줍니다.

함화 4년명 비상의 인물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함화 4년명 비상은 예술적으로도 중요합니다. 이 비상의 제작양식은 당나라의 방식이 아니라 고구려의 방식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즉, 이 비상은 발해가 고구려를 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비상의 높이는 64cm입니다. 사암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위의 사진을 보시면, 가운데에는 아미타불이 앉아있고, 아미타불의 양쪽에는 성문(가르침을 돕는 승려)가 서 있으며, 또 그 옆쪽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서 있습니다.

윗부분

비상의 최상층에는 여의주를 가진 두 머리의 용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함화 4년명 비상

함화 4년명 비상은 연호와 허왕부의 존재를 통해 발해의 황제국적 면모와 고구려를 계승한 예술의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