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23. 11:22ㆍ남북국의 유물 유적
출처: 한겨레 문명교류기행
발해는 당과 교류했던 국가입니다. 당나라 하면 떠오르는 것은 세계적인 문화의 융성입니다. 당시 당나라에는 불교와 도교뿐 아니라 외부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와 마니교, 네스토리우스파 크리스트교(경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가 전래되었습니다. 그런데 발해에서도 이러한 세계적인 모습이 동경 용원부 삼존불에서 보여집니다.
동경 용원부 삼존불을 보시면, 삼존불 중 왼쪽 협시보살이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 중앙의 불상의 가슴에도 십자가의 문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십자가는 바로 네스토리우스파 크리스트교, 즉 경교가 당나라뿐 아니라 발해에도 유입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불상에 십자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경교의 신도들이 경교를 당시 동아시아의 중심 종교였던 불교에 접목하여 전도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발해에 남아 있는 경교의 흔적은 아브리코스의 발해 절터에서 출토된 십자가에서도 발견됩니다.
출처: 샵쿠노프 저서
그렇다면, 네스토리우스파 크리스트교(경교)는 무엇일까요? 경교의 기원을 담당하는 인물인 네스토리우스가 크리스트교의 중심지에서 예수의 이(2)인격설을 주장하고, 성모의 신모설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당시 종교 권력을 쥐고 있던 세력에게 밀려 이집트로 유배가던 중 사망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밀려난 네스토리우스의 주장을 신봉하는 세력은 페르시아로 망명하였으나, 페르시아에서 주도권을 가진 조로아스터교와 갈등하고, 이슬람교의 공세까지 받으며 인도와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다시 이동하게 됩니다. 당시 중국은 당 태종 이세민의 치세였고, 당나라는 국제적인 정책 기조를 취하였기에 당나라는 경교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경교의 중국 전파를 잘 알 수 있는 자료인 대진경교유행중국비도 바로 당나라 시기인 781년에 건립되었습니다.
이렇게 당나라를 통해 동아시아 세계에 진입한 경교는 한국의 역사에도 그 흔적을 남긴 것입니다. 그러한 흔적이 드러난 곳이 바로 발해의 5경 중 하나인 동경 용원부에서 출토된 동경 용원부 삼존불인 것입니다.
그외에도 경교가 한국의 역사에 남긴 흔적은 더 있습니다. 바로 통일신라의 중요 유적인 경주의 불국사에서 돌십자가와 예수를 안은 성모마리아 소상이 출토된 것입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이처럼 로마에서 페르시아로, 인도로, 중앙아시아로, 중국의 당나라로 이동해온 경교는 한반도에도 도달하여 우리의 역사에도 흔적을 남긴 것입니다. 동경 용원부 삼존불은 발해가 국제적인 면모를 가지고 폭넓은 문화교류를 진행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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