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대사 이야기: 가쓰라 내각과 사이온지 내각의 전개

2021. 2. 26. 11:08일본의 근대사

제2차 가쓰라 내각에서는 정우회의 적극정책 요구가 있었습니다.

가쓰라는 이에 정의 투합 연설을 하게 되죠.

가쓰라 타로

그는 적극 정책은 불가하다고 표명하고, 정우회에 양해를 요구했습니다.

대신, 그는 차기 정권의 양보를 확인했습니다.

결국 적극 정책이 채택되지는 못했지만, 해군을 확장하는 예산은 수용되었습니다.

사이온지 긴모치

제2차 사이온지 내각에서는 재정 문제가 지속되었습니다.

그리고 긴축 방침도 지속되었죠.

해군 확장 계획도 1912년에서 1913년으로 1년 연기되었습니다.

육군은 군비를 요구했습니다.

해군의 예산이 먼저 고려되었습니다.

육군은 2개 사단을 증설하자는 제안도 했지만, 이 제안마저도 거부당하였죠.

결국 그리하여 내각에 대한 육군의 반발은 심화되었습니다.

우에하라 유사쿠

당시 육상이었던 우에하라 유사쿠는 사임을 하게 됩니다.

누적되어온 육군의 불만을 드러낸 것이었죠.

당시 육상과 해상은 현역무관만 될 수 있었는데, 결국 우에하라가 후임을 천거하지 않으면서 제2차 사이온지 내각은 불능 상태가 됩니다.

내각이 결국 총사직하게 되었죠.

이 시기에는 제 11회 총선거도 열렸는데, 정우회가 다수 당선되었습니다.

정권의 안정과 선거 결과가 반비례한 것이었죠.

정우회 세력인 사이온지 내각은 불안정을 겪고 결국 붕괴되었는데, 선거에서는 정우회가 우세했으니까요.

이러한 모습은 내각과 의회의 관계가 불분명한 매이지 헌법의 특성을 잘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