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대사 이야기: 다이쇼 정변

2021. 2. 27. 09:50일본의 근대사

이번 글에서는 일본의 정치적 대사건, 다이쇼 정변에 대해서 다루겠습니다.

원래 의원내각제에서는 다수당이 내각을 구성하는 것이 상식이죠.

그런데 메이지헌법에서는 천황이 수상을 임명했습니다.

원로 회의에서 수상을 천황에게 추천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천황이 수상을 임명하는 시스템이었던 것이죠.

제2차 사이온지 내각 이후 가쓰라가 추천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가쓰라 타로는 천황을 보좌하는 내대신에 취암하고 있었고, 내대신은 당시에는 중앙정치와 분리되어 은퇴와 동일한 취급을 받았습니다.

가쓰라 타로

이러 상황에서 가쓰라가 다시 추천되었다는 점은 여론을 비호의적으로 만듭니다.

가쓰라는 내각을 구성하여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행정정리를 통한 감세를 추진하고, 육해군 확장 계획을 1년 연기하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론의 비호의적인 태도는 계속되었습니다.

여론은 왜 원로가 독단으로 수상을 뽑냐는 불만을 드러냈고, 그러한 행태는 헌법 위배라면서 헌정옹호회를 구성합니다.

그러나 일단 이전 사이온지 내각의 정우회 세력인 정우회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고 가쓰라 세력과 정우회 세력이 정권을 교대하는 게이엔 시대의 지속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쓰라는 정우회와의 연대를 대신할 새로운 신정당을 구상하게 되었고, 정우회마저도 결국 등을 돌리게 됩니다.

호헌파는 가쓰라를 몰아내기 위한 작업에 본격적으로 돌입합니다.

가쓰라 내각의 탄핵 결의안을 제출한 것이죠.

가쓰라는 이를 막기 위해 의회정지 조치를 내립니다.

그러나 호헌파에게는 헌법 수호라는 명분이 존재하였습니다.

다이쇼 정변

결국 제3차 가쓰라 내각은 총사직하게 되고, 이를 다이쇼정변이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