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대사 이야기: 다이쇼 정변의 여파

2021. 3. 6. 13:29일본의 근대사

이번 글에서는 일본 정치 대사건인 다이쇼 정변의 여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다이쇼 정변은 민중운동을 통한 정권붕괴사건이라는 점이 특징이죠.

그런데 이런 호헌운동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습니다.

오쿠마 시게노부는

" 우리 국민은 호헌운동에는 관심이 많으면서 실제 헌법 위반 사항에는 관심이 없다."

라는 말을 통해 호헌운동으로 이루어진 다이쇼 정변을 비판하였습니다.

오쿠마 시게노부

그는 당파적 공격과 대중 선동을 경계하였던 것이죠.

오쿠마 시게노부는 치안경찰법의 폐지와 선거권 확대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다이셔 정변 이후, 제1차 야마모토 내각이 성립됩니다.

야마모토 곤노효에

야먀모토 내각은 정우회를 이끈 하라와의 교섭을 진행하여, 수상, 육상, 해상, 외상을 제외한 모든 구성원이 정우회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문관임용령도 개정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특별자유임용의 범위가 확대되었죠.

군부의 전횡을 방지하기 위해 현역무관제도 폐지되었습니다.

가쓰라 타로

한편, 가쓰라 타로는 이미 죽었지만, 그의 신정당 구성은 실현되었습니다.

바로 입헌동지회가 설립된 것이죠.

헌정본당의 맴버들이 대거 참여하였고,

가토 다카아키

가토 다카아키 중심으로 결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멘쓰 사건도 이 무렵에 발생합니다.

지멘쓰는 독일의 중전기 회사였는데, 수주를 위해 일본 해군에 뇌물을 제공하게 되죠.

그런데 러한 불법 행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영국 군함에 대한 발주 뇌물 사건마저도 발각됩니다.

결국 보다못한 귀족원이 예산을 부결하였고, 제1차 야마모토 내각은 총사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