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13. 11:25ㆍ삼국의 유물 유적
출처: 문화재청
무령왕릉의 은팔찌
무령왕비 은팔찌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무령왕비의 은팔찌입니다. 무령왕릉은 백제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고분입니다. 무령왕릉에서는 삼국시대의 고분 중 최초로 지석이 확인되어 무덤의 주인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령왕릉에서는 수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습니다. 이러한 유물들을 통해 우리는 백제의 상당 부분을 복원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 다루는 은팔찌를 통해서도 우리는 백제의 면모를 살필 수 있습니다.
무령왕비 은팔찌는 무령왕비의 목관에서 발견된 한 쌍의 은팔찌입니다. 바깥지름은 8cm이고, 고리지름은 1.1cm입니다.
출처: 문화재청
용의 힘찬 기상을 표출하다
무령왕비 은팔찌는 매우 정교한 무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먼저, 팔찌의 안쪽에는 톱니의 모양이 세겨져 있습니다. 매우 정교하고 섬세합니다. 바깥쪽에는 두 마리의 용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좁은 공간에 표현되어 있지만, 3개의 발과 갈기와 머리, 눈, 다리, 발톱 등 필요한 부분이 모두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고, 힘찬 용의 기상과 생동감이 드러납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무늬들은 망치로 은판을 두드려 두드러지게 하는 타출기법을 사용하여 제작한 것입니다. 세부적인 부분은 끌을 통해 표현했습니다.
출처: 문화재청
백제의 팔찌, 장인의 흔적
무령왕비 은팔찌에는 아름다운 무늬 말고도 주목해야할 또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팔찌의 안쪽에 새겨진 백제 장인의 흔적입니다. 무령왕비 은팔찌의 안쪽에는 한자로 된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庚子年二月多利作大夫人分二百州主耳(경자년이월다리작대부인분이백주주이)’
우리말로 이해가 쉽게 풀자면, '경자년 2월, 다리라는 사람이 대부인용으로 은 230주이로(이 팔찌를) 만들었다'라고 보입니다. 이러한 글을 통해 우리는 이 팔찌가 제작된 연도와 제작한 장인, 팔찌의 무게 등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팔찌에 대한 기록이 명확히 남아있는 것은 무령왕비 은팔찌가 유일하다는 점에서 이 유물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집니다. 이 은팔찌의 글을 더욱 자세히 보면, 제작자는 '다리'라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작한 장인의 이름을 새겼다는 점에서 백제는 기술자를 존중하는 사회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글에서 무령왕비를 '대부인'으로 칭한 것을 볼때, 백제는 왕비를 대부인이라고 칭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경자년은 520년을 가리키므로, 526년 12월에 왕비가 사망하였다는 기록을 토대로 파악하면 왕비가 죽기 6년 전에 이 은팔찌가 제작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230은 은팔찌의 제작에 이용된 은의 양이고, "주이"는 은의 단위로 쓰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렇게 팔찌에 관한 기록이 자세하고 명확히 남은 것은 유일하다는 점은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점입니다. 무령왕비 은팔찌는 고대의 금속기술을 연구하는데 주요한 자료인 것입니다. 이러한 가치를 토대로 무령왕비 은팔찌는 국보 제160호로 지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