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국의 유물 유적(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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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공주 정혜공주의 무덤! 발해 모습 조금이라도 보여주다!
발해 공주의 무덤이 발견되다 정혜공주묘는 발해의 제3대왕 문왕의 둘째 딸인 정혜공주의 무덤입니다. 발해는 역사 자료가 많지 않아 유적의 발굴이 매우 중요한데요, 정혜공주묘의 발굴을 통해 우리는 발해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혜공주묘는 1949년에 출토되었습니다. 무덤의 위치는 동모산 돈화현 육정산입니다. 정혜공주묘는 굴식 돌방 무덤입니다. 굴식 돌방 무덤은 판 모양의 돌을 사용해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덮어 굴처럼 보이게 한 무덤을 말합니다. 굴식 돌방 무덤은 고구려의 무덤 양식이었습니다. 고구려는 초기에 돌무지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장군총이 대표적인 돌무지 무덤의 예시입니다. 시신을 지상에 두고 돌을 쌓아 올려 만든 것이 돌무지 무덤인데, 이후 고구려의 무덤양식은 돌로 방을 ..
2021.02.03 -
발해의 오랜 수도 상경 용천부!!!
상경 용천부는 발해의 대부분의 시기동안 수도의 역할을 했습니다. 처음 발해는 동모산에서 건국되었습니다.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세력을 결집하여 동모산에 진국을 세우게 됩니다. 나중에 진국은 곧 발해가 되었고, 이후 발해는 무왕 시기에 수도를 중경 현덕부로 옮기게 됩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발해의 세력은 점점 강해져 더욱 큰 규모의 수도를 필요료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발해는 고구려와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거대한 궁궐을 건립하고 상경 용천부로 수도를 옮기게 됩니다. 발해가 상경성으로 천도한 해는 756년 무렵, 문왕의 치세였습니다. 이후 동경이 780년대 후반부터 794년경까지 수도였던 것을 빼고는 상경 용천부가 발해의 수도였습니다. 상경 용천부의 상경성은 발해의 중심지로서 '해동성국' 발해의 번영을..
2021.02.02 -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화려한 불교 미술과 공예 작품!
출처: 문화재청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은 마한의 왕궁이 있던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한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을 보수하기 위해서 탑을 해체하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귀중한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러한 유물들은 백제나 통일신라 또는 고려의 것이라는 여러 주장이 있지만, 대체로 불상과 사리의 양식으로 볼 때, 통일신라의 것으로 여겨집니다. 출처: 문화재청 가장 주목되는 유물은 바로 금판으로 제작된 금강경입니다. 19개의 금판 위에 17행으로 금강경의 문장을 눌러서 찍어낸 것입니다. 정밀하게 조각된 활자나 판목을 이용하여 찍었다는 점을 정교한 글자의 형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금으로 제작된 사각형 모양의 사리합도 있습니다. 유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졌습니다. 표면에 특별한 장식은 없습니다. 은은하게 비치..
2021.02.01 -
민정문서, 신라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려주다!
통일신라의 민정문서 (촌락문서)는 조세와 공물, 역의 징수를 위한 기초 자료였습니다. 발견된 민정문서는 서원경(현재의 충북 청주) 주변 4개 촌락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민정문서는 일본 정창원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민정문서는 양안(토지 대장)과 호적(호구장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이는 국가 차원에서 노동력과 생산자원을 철저하게 관리했음을 의미합니다. 민정문서의 내용도 살펴보겠습니다. 민정문서에는 매년 조사한 변동 사항이 기록되었으며, 촌주가 3년마다 작성하였습니다. 인구, 가호, 노비의 수, 3년 동안의 사망과 이동 내역을 기록하였습니다. 사람은 나이에 따라 6등급으로, 호(가구)는 인구 수에 따라 9등급으로 분류하였습니다. 해당 지역의 토지 종류와 면적 가축 유실수까지도 가록하였습니다. ..
2021.01.31 -
발해 건축의 흔적, 발해 치미
발해 건축의 거대한 흔적이 남다 발해 치미는 발해의 건축 미술을 보여주는 유물입니다. 발해 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치미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데요, 치미는 고대의 목조 건축물에서 용마루(기와 지붕 중앙의 수평 부분)의 양쪽 끝에 높게 부착하던 장식 기와를 말합니다. 치미는 주로 물에 의한 침수나 불로 인한 화재와 같은 재난을 방지하거나 건물의 위용을 드러내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치미는 주로 점토로 제작되었고, 접합부에 홈을 파서 지붕에 장착했습니다. 발해도 궁궐, 사찰과 같은 목조 건물들을 건축했기에 치미를 만들었습니다.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 용천부에는 총 10개의 절터가 있었던 것으로 발굴조사결과 밝혀졌는데요, 그 중 제9절터와 제1절터에서 발해의 치미가 출토되었습니다. 이 치미들은 발해의 건..
2021.01.29 -
신라 속 서역의 흔적! 원성왕릉(괘릉) 무인상!
원성왕, 살아서는 독서삼품과를, 무덤에서는 무인상을 남긴 왕! 원성왕릉은 경주에 위치한 무덤으로, 이 무덤은 원성왕의 무덤으로 추정됩니다. 원성왕은 신라의 제38대 왕으로 벽골제를 증축하고,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독서삼품과를 실시하는 등 여려 업적을 남긴 왕입니다. 4년(서기 788) 봄, 처음으로 독서삼품(讀書三品)을 제정하여 관직을 주었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ㆍ『예기(禮記)』ㆍ『문선(文選)』을 읽어서 그 뜻에 능통하고, 이와 동시에 『논어(論語)』와 『효경(孝經)』에 밝은 자를 상품으로 하고, 『곡례(曲禮)』ㆍ『논어』ㆍ『효경』을 읽은 자를 중품으로 하고, 『곡례』와 『효경』을 읽은 자를 하품으로 하였다. 5경, 3사, 제자백가서에 모두 능통한 자는 절차를 뛰어넘어 발탁하였다. 예전에는 활쏘기만..
2021.01.28